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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aru Kihink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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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 http://www.otaru-kihinkan.jp/eng2.html

 

니신 대부호(大富豪)와 17세 소녀의 꿈

아오야마 도메키치, 아오야마 마사키치의 2대에 걸쳐 재산을 축적하였으며, 아오야마 일가가 가장 번창했던 다이쇼 6년(1918년)에 마사키치는 딸인 마사에와 사위인 다미지와 함께 별장을 건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니신(청어) 대부호라고 불려졌던 마사키치는 뛰어난 미적 감각의 소유자로, 별장을 예술적인 건축물로 짓기 위해 약 6년 반이라는 시간을 들여 완성시켰습니다.

제 3대인 마사에가 17살이던 시절, 야마가타현의 사카타시에 있는 혼마 일가의 저택에 여러번 초대된 적이 있는데 그 때 마사에는 혼마 일가의 호화스러운 저택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당시 혼마 일가는 “혼마님처럼 되려고 해도 될 수 없으며, 그나마 된다해도 영주정도다”라고 할 정도로 일본 제1의 대지주였습니다. 하지만 마사에는 아버지인 마사키치가 별장을 짓기 시작했을 때에 “저 혼마 저택보다 더 좋은 건축물을 이 슈쿠츠에 지어 보이겠어”라고 결심했습니다.

 

청어.jpg

 

총 공사비

니신전(구 아오야마 별장)의 건축비는 31만엔으로, 당시 신주쿠의 유명 백화점 건축비가 50만엔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별장이 얼마나 호화스러웠을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마사키치는 야마가타현 사카타에서 일본 전통가옥의 달인인 사이토 네노스케, 이시가키 세이지로, 도몬 이치타로를 불러들여 그들의 지도 하에 50여명의 목수에게 경합을 벌이도록 했습니다.

 

호화스러운 건축물

재료는 사카타에서 대량으로 운반해 온 느티나무를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적설량이 많은 홋카이도에서는 보기 드문 기와지붕으로 처마 밑에는 손으로 조각한 조각품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마루와 기둥은 옷칠을 한 느티나무를 사용하였으며, 회반죽을 바른 벽, 오랜 세월 물이나 땅 속에 묻혀있던 삼목(고급 공예품, 장식용으로 씀)으로 만든 넓은 천장, 밟으면 휘파람새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나도록 마룻널을 깐 마루, 처음부터 끝까지 이음매가 없이 이어진 기둥연결용 나무. 자단, 흑단, 철도목, 삼목, 회양목을 사용한 서재, 장지문 손잡이는 칠보(당시에는 보석과 같은 가치를 지녔다.)를, 난간에는 대나무, 자단, 흑단으로 조각을 장식했습니다. 또한 건물의 세 방향에는 정원이 있고, 그 외에에도 가족만이 보기 위해 만들어진 연못이 딸린 정원이나 소나무와 돌로 이루어진 중간 정원 등 별장의 호화로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면 셀 수도 없이 많은 것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또한 가노파의 사상을 이어받은 일본화 화가들이 경쟁하며 그린 그림(맹장지에 그린 그림)과 서예도 훌륭합니다.

 

역사적 건축물 제 3호로 지정

슈쿠츠지역이 니신(청어)잡이로 한창이던 시절, 아낌없이 많은 돈을 사용하여 건축한 호화저택.

이 별장이 홋카이도 굴지의 저택이 된 것은 오타루시가 이 별장을 역사적 건축물 제 3호(쇼와60년 7월 20일)로 지정한 것을 통해 이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 당시를 떠올리며, 천천히 감상해 주십시오.

 

오타루 니신(청어) 산업의 번영

니신(청어)이라고 하는 생선을 먹어 본 적이 있습니까? 니신(청어)을 모른다고 하더라고, 정월에 먹는 황금색의 「가즈노코」(청어알)는 아실거라 생각됩니다.

오타루의 초기 경제는 청어로 기반을 잡았다고 할 만큼 오타루에 있어서 청어는 중요한 산업이었습니다.

메이지 시대부터 다이쇼 시대까지 홋카이도 서쪽 해안 앞바다 일대는, 산란을 위해 돌아오는 니신(청어)으로 인해 은색으로 빛났으며, 하늘에는 무수한 갈매기들이 날아다니고, 어부들은 서로 선두를 경쟁하며 배를 저어가는 풍경으로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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